한국의 젊은 지휘자 김신, 우즈베키스탄 국립 오케스트라와 한.우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무대에 오르다

우즈베키스탄의 10월에는 가을이 깊어지고 콘서트 홀의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한국 우즈베키스탄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가 2022 10 25일 화요일 타슈켄트의 청년 문화 궁전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온 젊은 지휘자 김산 씨가 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시작 되기 전 김신 지휘자(28)를 만나 그의 음악 여정과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인상, 협주 과정과 연주곡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휘자로서의 포부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 우즈베키스탄에서 협연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우즈벡 방문은 처음인가?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첫인상은 어떤가?

김신: 우즈베킨스탄은 처음 방문이다. 도시가 너무 깨끗하고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고 현재 6일 정도 되었는데 생활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나와 잘 맞는 나라 같다.

기자: 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몇 번의 리허설이 있었나? 리허설은 어땠나?

김신: 3번의 리허설이 있었다. 굉장히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이다. 특히 관악 파트의 수준이 아주 높다. 현악기들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모든 관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의가 높아 감동 받았다.

기자: 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신: 한우 수교 30주년을 맞아 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 투어 연주를 가졌고 우즈베키스탄 국립 음악대학교의 우린바예브 총장이 나를 초청하여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었다.

기자: 자신의 성장 배경과 음악교육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김신: 출생이 독일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많이 접하고 처음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바이올린과 튜바를 공부하면서 지휘 공부를 했다. 가족 중에 음악가가 있어서 클래식 음악 환경에서 자랐다. 고모부가 지휘자이고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탈리아 극장에서 지금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약 8살 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음악 공부를 하였다. 독일 라이프찌히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한테 사사 받았고, 이탈리아에서는 고모부인 칼로팔리스키 지휘자한테 교육 받았고, 한국에서는 검정고시를 통해 20살에 ‘한국예술종합대학’에 입학하여 지휘를 전공하며 김홍수 교수님과 당시 ‘한예종’에서 강의하던 칼로팔리스키 교수님께 지휘를 배웠다.

기자: 독일, 이탈리아, 한국에서 음악교육 과정을 보냈는데, 나라별로 음악교육의분위기가 다른가?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신: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클래식이 발달되었고 그 깊이가 깊다. 자기들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이탈리아는 오페라와 성악이 발달되어 지휘를 배울 때 선율적인 것, 어떻게 멜로디를 만들고 끌고 가는지를 중점으로 배울 수 있었고, 한국은 다 합쳐진 곳이다. 여러 나라에서 배우고 온 유학파 교수들이 많아서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다 배울 수 있었다.

기자: 오늘 연주할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김신: 차이코프키 교향곡 5번이고 오프닝으로 모차르트 마술피리 ‘밤의 여왕 아리아’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의 이 거리’ 성악곡 2곡을 함께 연주한다.

기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을 협연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김신: 이 곡이 굉장히 변화무쌍하고 흐름을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말기에 정신분열증을 나중에 겪긴 하는데 그전에 괜찮을 때 쓴 곡인데, 곡이 극단적이고, 뭔가 변화가 많은 것을 보면 그 때부터 조금 느껴진다, 뭔가 스스로 내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그런 부분이 이 시대의 현재 상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세계에서 블랙스완이 ‘탁탁’ 터지고 있는데, 경제 상황도 그렇고, 이 음악도 흐름 속에서 ‘팍팍’ 터진다. 그래서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이 곡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끝부분으로 가면서 기쁨, 포옹, 사랑이 나온다.  이 곡을 연주하면서 차이코프스키의 의도를 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듣는 사람들에게 와 닿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앞부분의 음악이 다 난리가 나도, 결국 모두가 바라는 바는 모두가 평화하고 하나되는 것이니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다 정리해서 화합으로 끝난다. 결국에는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기자: 그 동안 협연했던 곡들과 무대 그리고 어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나?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김신: 한국에서는 현재 2008년에 설립된 ‘소리얼’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등 많은 연주를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오페라 협연을 했고 ‘라보엠’, ‘사랑의 묘약’ 등을 지휘하고 성악가들과 피아노와 협연했고 국립오페라단 마스터 클래스에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국립오페라단과도 협주했다. 스위스에서의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위스의 오베그루그에서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오케스트라 협연이 있었다. 처음으로 외국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는데 22살 때였다. 푸른 눈의, 나이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기’에 좀 누렸었다. ‘기싸움’이 있었다. 음악이 끌려오지 않았다. 자기들만의 프라이드가 강해서 리허설 때 지휘자를 보고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악장을 보고 연주하더라. 다행히 무대에서는 하나가 되어 감사하게 협연이 잘 끝났다.

기자: 우즈베키스탄 오케스트라와도 ‘기싸움’이 있었나?

김신: 여기서는 없었다. 여기는 모두 젠틀하고 단원들 나이대가 젊어서 그런지 그런 ‘기싸움’ 같은 것이 없었다.

기자: 지휘를 선택한 이유는? 지휘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신: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였다. 초등학교 때 오케스트라 연주에 가서 보면 가운데 선 한 명이 단원 전체를 손으로 리드하는 것이 아주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지휘의 매력이 상당하다. 하지만 지휘자의 역할이 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여전에는 마에스트로의 권위로 지휘자가 음악가들을 끌고 갔었다. 지금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단원들을 존중하고, 존중과 배려 속에서 만들어 내는 음악이 굉장히 좋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모아 모두의 동의 하에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솔로이스트가 악기로 곡을 혼자 완성도 있게 만들어 가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 깊이 있는 곡 해석과 분석을 위해 지휘자로서 어떤 준비 작업을 하나?

김신: 악보를 많이 본다. 악보를 공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고, 작곡가의 생애도 깊게 알아보고 최대한 곡을 썼을 당시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며 다가간다.

기자: 좋아하는 작곡가는? 특히 좋아하는 곡은”

김신: 당연히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고 라흐마니노프도 좋아한다. 작곡가마다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이 있어서 한 명이나 한두 곡을 꼽을 수는 없지만 특히 좋아하는 곡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유명한 곡인데 연주하기 굉장히 어렵고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 최근 3개월 전에 한국에서 지휘했다.

기자: 롤모델로 삼는 지휘자는?

김신: 굉장히 과한 해석과 빠른 템포로 평론가들의 많은 비평을 받았고 받고 있는 그리스 태생의 지휘자 쿠렌치스를 되게 좋아한다. 이전에 그는 “나에게 10년만 시간을 달라 클래식을 살려보겠다”라고 말했었는데, 10 년이 지난 지금 보면 굉장히 와 닿고 대중적인 인기도 있고 음악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 베토벤이 이럴 수 있구나, 레퀴엠을 이렇게 해석 하는구나 … 좋아하다.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비판하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뜻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용기,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용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기자: 지휘자로서 자신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 포부는 무엇인가?

김산: 현실과 가까운 지휘자가 되고 싶다. 음악가들이 음악에만 몰입하고 음악가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고립되는 느낌이 든다. 세상은 음악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음악가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지휘자는 예술만을 위한 지휘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더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 음악가나 애호가들끼리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지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향악 축제도 아주 좋은데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의미 있는 콘서트, 예를 들면 최근에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동참했던 ‘DMZ평화예술제’와 같은 콘서트, 가슴 아팠던 ‘세월호’와 관련된 연주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현장, 그런 곳에 더 가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 주변의 젊은 동료 음악가들도 음악가로서의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와 현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나?

김산: 내가 주도적으로 주변에 자주 말하는 편이다. 동의를 얻기 쉽지 않지만 ‘음악 하는 우리가 더 잘되고 더 잘해서, 콩쿨에 나가서 우승도 하고 해야 하지만, “예술의 전당’뿐만 아니라 현장으로 더 가야 한다. 사회 현장에 클래식과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자주 주장하고 있다.

기자: 한국의 클래식 교육은 엘리트 위주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는데, 음악가로서 사회 활동에 대한 개성적인 생각은 한국과는 다른 환경,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음악 교육 과정을 거치고 활동한 덕분인가?

김산: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해외를 많이 돌아 다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에게 영향을 준 곳은 인도이다. 인도에서의 경험이 가장 컸다. 부모님께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으셨고 예원 예고 입시 레슨 등 엘리트 코스의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부모님도 음악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 인도에서 1년 반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극하게 가난한 지역에서 지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물 파고 밥짓고 하면서 전기도 없는 곳에서 지냈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있구나! 그런데 왜 아무도 모르지?’라는 생각을 했다. TV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현장에서 보면 다르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런 생각들이 쌓였다. 내가 지휘자가 되면 이런 곳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예종’이 진짜 좋은 학교인데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음악에만 갇힌 느낌이 들어 잘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 음악가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기자: 다가오는 연주 일정은 무엇인가?

김신: 11월에 ‘소리얼’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미국 애틀렌타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아직 확정은 안되었는데 아마 12월에 한국에 모여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 신예 작곡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창작 오페라 공연 같은 큰 무대가 있을 것 같다.

기자: 앞으로도 우즈베키스탄에 다시 와서 협연하고 싶은가?

김신: 물론이다. 앞으로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휘자로서, 사회의 어두운 곳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가 음악으로 밝은 빛을 만들어 내는 음악가로서 앞으로도 자신의 꿈을 멋지게 펼치기를 빌며 우즈베키스탄의 무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김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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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сточник: «Корейцы Узбекистана» № 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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